베이비뉴스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교육포럼은 조기 사교육 광풍 속에 대한민국 아이들의 빼앗긴 시간을 되찾기 위한 25인의 릴레이 기고 '아이들의 시간을 지켜주세요'를 연재합니다. 4살 아이가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치르고, 만 5세가 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실이 텅 비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영유아 교육의 현실입니다. 조기 선행학습은 아이들의 발달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누려야 할 놀이와 탐색의 시간을 빼앗고 있습니다. 영유아 교육 현장의 교사, 연구자, 부모, 정책 전문가 26인은 조기 사교육이 아이들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교육 현실을 짚고, 국가와 사회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조기가 아닌 ‘적기교육’을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제안합니다. 빨리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때 자라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권리입니다.
영유아교육은 부모가 선택해 구매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모든 아이가 동등하게 누려야 할 발달권과 교육권의 실현 체계다. ⓒ베이비뉴스
◇ 왜 지금, 국가책임 영유아교육인가
영유아교육은 부모가 선택해 구매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모든 아이가 동등하게 누려야 할 발달권과 교육권의 실현 체계다. 유니세프는 모든 아동이 삶의 가장 이른 시기부터 건강, 영양, 안전한 환경, 반응적 돌봄, 조기학습의 권리를 가진다고 밝히고 있다, OECD도 영유아교육·보육 인력이 아동의 학습, 발달, 웰빙 경험을 만드는 기초이며, 그 질은 인력의 근무조건과 전문성에 의해 좌우된다고 본다. 영유아의 하루와 교사의 노동조건을 분리해서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출생 시대일수록 이 원칙은 더 분명해져야 한다. 출생아 수가 줄었다는 것은 국가가 책임을 줄일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더 높은 질의 환경을 보편적으로 보장해야 할 이유다.
2024년 기준 어린이집 2만 7,387개소, 보육아동 94만 1,303명이라는 수치는 이미 현장이 양적 팽창의 시대를 지나 질적 재구성의 시대로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이제 국가책임 영유아교육은 “얼마를 지원할 것인가”보다 “아이의 하루를 어떤 질로 보장할 것인가”를 묻는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 현황과 문제: 왜 지금의 방식으로는 국가책임을 말할 수 없는가
▲ 현원 연동 재정 구조는 저출생 시대의 질 보장 체계가 아니다.
현재 보육 재정은 ‘부모보육료’와 ‘기관보육료’를 중심으로 운영된다. 보건복지부는 ‘부모보육료’를 보호자에게 100% 지원하는 보육료로, ‘기관보육료’를 민간·가정어린이집 등이 인건비 등 운영비 지급을 위해 재원 아동 수에 따라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보조금으로 설명한다.
문제는 저출생 상황에서 이러한 구조가 현원 감소를 곧바로 교사 인건비 불안정과 반 운영 불안정으로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실제로 2024년 보육사업안내는 민간·가정 어린이집 0세반에서 정원 3명 중 1명이 부족해 2명만 재원하는 경우, 현행 보육료 수입만으로는 보육교사 최저임금 지급이 곤란하다고 적시했다.
교육부가 2026년도 보육 사업 안내에서 유아반 인건비 지원 최소 기준 완화와 원장의 보육교사 겸임 특례를 각각 연장한 것도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3세 반은 원칙상 8명, 4세 이상 반은 11명 이상이어야 인건비 지원이 가능하지만, 현재는 각각 6명, 8명으로 완화된 기준을 2027년 2월까지 연장했다.
또 정원 21~39인의 일부 기관보육료 지원 어린이집에서는 원장의 보육교사 겸임 특례도 2026년 12월까지 연장되었다.
이는 저출생이 이미 현장의 상시 운영기준을 흔들고 있다는 의미다.
▲ 법은 8시간과 대체 배치를 말하지만, 현실은 장시간 노동과 공백의 전가다
현행 법령상 보육교사 배치기준은 0세 3명당 1명, 1세 5명당 1명, 2세 7명당 1명, 3세 15명당 1명, 4세 이상 미취학 영유아 20명당 1명이다.
또한 반을 담당하는 보육 교사의 근무시간은 평일 8시간을 원칙으로 하며, 보수교육·출산휴가 등으로 공백이 생길 경우에는 대체 원장, 대체 교사 또는 그 밖의 인력을 배치하도록 되어 있다.
제도만 보면 적정 배치, 8시간 노동, 대체인력 투입이 이미 원칙이다.
하지만 2024년 ‘전국보육실태조사’는 그 원칙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육교사의 평균 1일 총 근로시간은 9시간 38분, 주당 총 근로시간은 49시간 55분이었고, 평균 점심시간은 16분, 평균 휴게시간은 44분이었다.
조사 대상 어린이집의 55.9%에서는 시간외근무가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직장어린이집은 그 비율이 94.7%에 달했다.
법적 원칙과 실제 노동구조 사이의 간극이 상시화된 셈이다.
▲ 휴게 시간과 병가, 대체 교사 문제는 주변 이슈가 아니라 교육의 질 문제다
2020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기본반 담임교사의 63.1%는 영유아 낮잠 시간 중 1시간 이내로 휴게를 사용하고 있었고, 선호하는 휴게 방식으로는 58.7%가 ‘업무 종료 후 또는 1시간 조기 퇴근’을 꼽았다.
다시 말해 현재의 휴게시간 운영은 법정 시간을 형식적으로 맞추더라도 실제로는 교사가 충분히 쉬는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다.
같은 연구에서 휴게 시간 보장이나 실제 사용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로는 ‘대체 가능한 인력이 없어서’가 39.0%, ‘행정 처리 등 보육 외 업무 때문’이 30.5%였다.
법령은 보육 교직원의 공백이 생기면 대체 교사 또는 대체 인력을 배치하도록 규정하지만, 현실에서는 그 공백이 동료 전가와 초과 노동으로 메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구조에서는 휴게뿐 아니라 병가 역시 실질적 권리로 행사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 쉬지 못하는 교사는 결국 교실의 불안정으로 이어진다
2024년 ‘전국보육실태조사’에서 보육교사의 42.9%는 신체·건강 문제를 경험했다고 답했고, 그 유형 중 근골격계 질환이 75.2%로 가장 많았다.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한 비율도 22.6%였으며, 그 가운데 83.0%는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영유아교육이 관계의 안정성과 정서적 조율을 핵심으로 하는 영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교사의 건강과 소진은 곧바로 영유아의 일상의 질과 연결되는 문제다.
저출생의 충격은 교사의 고용불안으로도 이어진다.
같은 조사에서 2023년 한 해 동안 이직·사직한 보육교사가 있는 어린이집은 74.8%였고, 이직·사직 사유 1위는 재원 아동 수 감소에 따른 담당반 폐반(26.2%)이었다.
건강상 이유도 19.1%에 달했다.
아이 수가 줄면 반이 닫히고, 반이 닫히면 교사가 떠나며, 남은 교사의 노동강도는 더 높아진다.
지금의 구조는 저출생의 부담을 가장 먼저 교사와 아이의 하루에 전가하고 있다.
▲ 국가책임을 말하면서도 실제 처우는 지역별로 파편화돼 있다
2025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보육 교직원 처우개선 지원사업 예산은 5,063억 5,300만원 규모였지만, 처우개선비 지원사업은 13개 시도와 70개 시군구, 근속 수당은 8개 시도와 116개 시군구, 월정액 수당은 13개 시도와 104개 시군구에서 각각 달리 운영되고 있었다.
국가책임을 말하면서도 실제 교사 처우와 영유아의 교육 환경이 지역 재정 여건과 지자체 의지에 따라 달라지는 구조는 공공성의 관점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의 구조는 저출생의 위기와 그로 인한 부담을 가장 먼저 아이들의 교실과 교사의 노동에 전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향해야할 진짜 국가 책임교육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할까?
*임미령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교육포럼 의장의 '국가책임교육,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기고는 총 2편으로 진행됩니다. 이어지는 두 번째 편에서는 영유아 교육을 권리·노동·공공성의 관점에서 재구성하기 위한 철학적 기초와 5대 핵심 개혁과제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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