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작품을 알려야 할까요?” 최근 미술계는 유명 외국작가나 원로작가에 초점을 맞춰 전시, 홍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국내 전시에서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소수의 작가들만 주목받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미술계의 이러한 방식에 신진작가들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좁은 문’으로 불릴 만큼 치열하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란 젊은 작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신진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코너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고자 한다. 팝아티스트 낸시랭, 김선 비평가, 정해연 큐레이터 등 관련 전문가들의 작품에 대한 폭넓은 시각도 제공한다. 앞으로 온라인 갤러리 [영블러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만나보길 바란다.
# ART STORY
저의 작업은 ‘생존’이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도시, 그리고 좁은 작업 공간 속에서 조각가로 살아가기 위해 늘 조심하며 작업해 왔습니다. 그러나 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리는 자연스럽게 소음이 돼 외부로 흘러나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었고, 이는 작업의 부산물이 아니라 작업과 함께 감내해야 하는 현실적인 조건이 됐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소리와 조각의 관계로 이어졌고, 점차 소음을 최소화하려는 태도를 기반으로 〈시끄러운 조각〉 시리즈가 이어져 왔습니다. 저의 작업은 조각과 소음, 그리고 개인의 경험에서 시작해, 결국 각자의 생존 조건이 얽혀 있는 공존을 목표로 합니다.
# ARCHIVE
〈시끄러운 조각〉 시리즈는 이웃 간 층간소음에서 들려오던 약 90dB의 소리를 기준으로 시작됐습니다. ‘저들보다는 시끄럽지 말자’라는 기준은 전동 공구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어졌고, 실제 이웃들이 층간소음 전쟁에 사용하던 ‘골전도 스피커’를 이용해 조용히 작업하려는 과정의 소리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90dB을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작업의 결과뿐 아니라 작업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소리까지 함께 제시하는 조각 작업입니다.
이후 작업은 점차 더 조용한 방향으로 이동했습니다. 특히 야간 층간소음 기준이 50dB이라는 사실은 저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됐습니다. 저는 이 기준을 통해 작업 소리의 크기를 줄이는 문제와 함께 어떤 소리가 언제, 누구에게 문제로 인식되는가라는 조건 자체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또한 건축에서 벽과 바닥의 두께가 50cm가 되면 소음의 전달력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두께 50cm 구조를 적용하고, 작업 과정의 소리가 50dB을 넘지 않는 방법만을 통해 50년이 넘은 전시 공간에서 두 번째 개인전 《50》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관심은 작업의 결과보다 작업이 이루어지는 환경과, 그 환경을 함께 사용하는 타인의 존재로 이동했습니다. 특히 지하 작업실이라는 열악한 조건에서 작업을 이어가는 동료 작가들의 상황에 주목하게 됐고, 환기가 어려운 공간에서 작업과 생활을 하고자 틀어야 하는 닥트가 돌아가는 소음과 같은 ‘숨소리’로 이어졌습니다. 세 번째 개인전 《숨은 소리》는 이러한 지하 작업실의 숨소리, 닥트를 가위로 자르고 납땜하며 발생하는 작가의 숨소리,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지하라는 숨은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라는 의미에서 진행됐습니다.
작업은 결국 무음에 가까운 영역으로 내려왔습니다. 〈언제든, 어디서든〉은 타지역 레지던시 경험에서 출발한 작업으로, 장소만 바뀌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타인과 벽 하나를 사이에 둔 환경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시작됐습니다. 이를 통해 저는 무음이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작업 방식의 문제라는 물리적 현실을 인식하게 됐고, 대상의 표면을 최대한 조용히 손으로 갈아내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한편 〈삶과 환경〉,〈Post-(it)-Human〉은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삶을 통해 무음을 이야기하는 작업입니다. 두 작업은 실제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빛의 노이즈를 생성합니다. 이는 각자가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소리를 빛으로 변환한 것입니다.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을 하면서도 시끄럽다는 지적을 받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타인을 고려하지 않은 채 과도한 소리와 행동을 드러냅니다. 저는 이 상반된 두 존재를 서로 다른 재료로 대비시키며, 들리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소리로 가득 찬 공간을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각자의 생존이 걸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른쪽) Post-(It)-Human_포스트잇, Led, 필라멘트, 단채널사운드(33Sec), 앰프_가변설치_2025
# ARTIST STORY
최근까지 제 작업은 도시에서 조각가로 생존하기 위해 소음을 줄이고자 더 작은 소리를 목표로 했습니다. 90dB을 시작으로 50-숨소리-무음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작업을 이어오며 완전한 소리 없음은 불가능하다는 것과, 소음은 생존하기 위해 낼 수밖에 없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뒤돌아보니 제한적인 환경에만 맞춰 작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능동적으로 환경 자체를 스스로 바꾸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판단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계획 중인 작업은 소음을 완전히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노이즈 캔슬의 원리를 이용해 새롭게 구축한 환경에 맞춰 소음을 통해 소음을 제어하는 형식이 될 예정입니다. 결국 저의 작업은 조각과 소음, 그리고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각자의 생존이 충돌하고 얽히는 지점에서 형성되는 공존의 구조를 드러내는 방향으로 확장되고자 합니다.
ART CRITICISM
전기수 작가의 조각은 ‘생존’과‘공존’이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도시의 제한된 작업 환경 속에서 조각가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음은 더 이상 부수적인 요소가 아니라, 작업과 함께 감내해야 할 현실적 조건이 된다.
그의 작업은 이러한 조건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형태·소리·빛을 함께 제시하며 드러낸다. 관람자는 작품 앞에서 마치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미세한 신호를 감각하게 되는데, 이는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타인과 공간을 공유하는 감각적 긴장으로 확장된다.
전기수는 벽돌, 흡음재, 포스트잇 등 일상적 재료를 활용해 작업을 구성한다. 이는 특정한 조형 언어를 구축하기 위한 선택이라기보다, 자신이 놓인 환경과 조건을 그대로 작업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태도에 가깝다. 실제로 작가는 작업 공간, 이웃, 동료,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리까지 작업의 재료로 삼는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그의 작업은 완결된 형태라기보다 진행 중인 상태에 가깝게 보인다.「시끄러운 조각 : 터터타-쿠후쿠후」와 같은 제목 또한 재료, 과정, 결과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음을 드러낸다.
결국 전기수의 조각은 개인의 작업 환경에서 출발하지만, 서로 다른 생존 조건이 충돌하고 얽히는 지점을 가시화하며 공존의 구조를 탐구한다. 이는 보이지 않는 소리와 관계를 드러내며, 우리가 공유하는 공간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를 다시 묻는 작업이다. (정해연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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