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N] 6시간을 견디는 소리, 김미진 ‘춘향가’ 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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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N] 6시간을 견디는 소리, 김미진 ‘춘향가’ 완창

뉴스컬처 2026-04-16 10:35:55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가 다시 한 번 긴 호흡의 소리를 품는다. 5월 국립극장에서는 한 편의 판소리를 온전히 따라가는 시간이 마련된다.

무대는 공연이라기보다 긴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소리의 여정에 가깝다. 오는 5월 9일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완창판소리 - 김미진의 춘향가’는 특정 장면만을 골라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한 바탕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끊지 않고 이어가는 구조로 구성되어 관객이 이야기의 진행을 따라가기보다 그 안에 함께 머물게 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김미진. 사진=국립극장
김미진. 사진=국립극장

무대를 이끄는 김미진은 국립창극단에서 오랜 시간 활동해온 소리꾼으로, 창극과 판소리라는 두 영역을 오가며 자신만의 무대 언어를 구축해온 인물이다. 그는 배역을 처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소리의 결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드는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 왔으며, 이러한 작업이 축적되면서 무대 위 표현은 하나의 일관된 흐름으로 이어져 왔다.

김미진은 여러 작품을 거치며 입체적으로 경력을 쌓와 왔다. ‘정년이’에서 보여준 안정된 중심감, ‘서편제’에서 드러난 깊은 정서의 결, ‘장화홍련’에서의 복합적인 감정 처리까지 각각의 역할은 서로 다른 결을 지니면서도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며 김미진의 해석 방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험은 기교보다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해석력으로 확장되며 무대 전체를 견인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시에 전통 판소리의 기본 구조를 끝까지 밀고 가는 작업도 꾸준히 이어왔다. ‘수궁가’, ‘심청가’, ‘흥보가’를 완창하는 과정은 긴 호흡을 끝까지 유지하는 훈련이자 자기 확장의 과정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경험은 이번에 선택한 ‘춘향가’를 해석하는 기반이 된다. 특히 김세종 계열의 춘향가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절제된 흐름 속에서 서사를 쌓아가는 방식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긴 시간 동안 안정된 호흡을 유지하는 역량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번에 선보이는 김세종제 ‘춘향가’는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공유하면서도 표현 방식과 음악적 결이 정교하게 다듬어진 계열로 평가된다. 성춘향과 이몽룡의 만남과 이별, 재회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감정의 폭발보다 미세한 변화가 중심을 이루며, 그 안에서 인물의 심리가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러한 구조는 감정의 크기보다 결의 흐름을 통해 서사를 전달하는 방식과 맞물리며 전체적으로 절제된 밀도를 형성한다.

김미진의 음색은 이러한 구조와 맞닿을 때 더욱 분명한 특징을 드러낸다. 맑은 결 위에 감정의 그늘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창법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여운을 남기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이는 김세종제 춘향가가 지닌 서정성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결과적으로 이 무대는 장면 중심의 감상이라기보다 긴 흐름 속에서 미세한 결을 따라가며 감각을 쌓아가는 경험에 가까운 형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공연은 약 6시간 동안 중단 없이 이어질 예정으로, 하나의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기보다 시간 자체를 경험하는 구성에 가깝다. 관객은 장면을 구분해 소비하기보다 흐름 전체를 따라가며 감정과 서사의 변화를 체감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판소리 본래의 호흡과 리듬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러한 형식은 빠른 전개나 시각적 전환에 익숙한 감상 방식과는 다른 결의 집중을 요구한다.

2026년 5월 완창판소리 김미진의 춘향가 포스터. 사진=국립극장
2026년 5월 완창판소리 김미진의 춘향가 포스터. 사진=국립극장

장단을 담당하는 고수들의 역할 역시 이 긴 흐름 속에서 중요한 균형축을 이룬다. 김청만, 임현빈, 김태영으로 구성된 고수진은 각기 다른 세대와 경험을 바탕으로 소리의 흐름을 받쳐주며, 장단의 변화로 전체 구조의 긴장과 이완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의 호흡은 소리꾼의 창과 맞물리며 공연 전체의 리듬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

해설을 맡은 성기련 교수는 공연의 맥락을 짚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작품의 구조와 전개 방식, 그리고 판소리라는 장르가 지닌 형식적 특성을 설명하며 관객이 소리를 보다 넓은 시야로 받아들이도록 돕는 방식이다. 이러한 해설은 흐름을 끊기보다 오히려 이해의 폭을 확장하는 보조 장치로 기능한다.

국립극장의 완창판소리 시리즈는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전통적 형식으로 자리 잡아왔다. 특정 장면을 중심으로 구성된 공연이 아니라 한 바탕 전체를 온전히 감상하는 구조는 판소리 본래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현대 관객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감상 방식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이 시리즈가 지속되는 이유는 소리의 전체 흐름을 끝까지 따라가는 경험 자체가 여전히 유효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 역시 그 흐름 위에 놓인다. 익숙한 서사를 바탕으로 하지만 그 안에서 드러나는 미세한 해석의 차이는 매번 다른 감각을 만들어낸다. 결국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라기보다 오래된 이야기 속에서 다시 발견되는 결의 변화이며, 그 중심에는 긴 시간을 견디며 소리를 이어온 한 소리꾼의 호흡이 자리하고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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