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박정현 기자 | 30만명대 사용자를 보유한 왓챠가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 지형을 흔들 ‘트리거’로 작용할지 주목된다(모바일인덱스 지난해 12월 기준). 한때 토종 OTT 1세대로 불리던 플랫폼이 구조적 위기에 몰리면서 왓챠 인수전이 단순 매각을 넘어 산업 재편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왓챠는 지난해 8월 삼정KPMG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하고 새 주인 찾기에 나섰다. CJ ENM 등 복수 기업이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영상 콘텐츠 추천 플랫폼 키노라이츠는 재무적 투자자(FI)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의향서(LOI) 제출을 검토 중이다. 다만 LOI 제출 이후에도 예비 인수자 선정, 실사, 본입찰 등 절차가 남아 있어 실제 인수전은 이제 시작 단계라는 평가다.
▲ 왓챠, ‘데이터’와 ‘부채’가 함께 묶인 매물
왓챠의 매각은 선택이 아닌 생존 문제에 가깝다. 지난해 6월 공시된 2024년 재무제표에 따르면 자본총계는 -875억 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진입했다. 총부채는 자산 규모를 크게 상회하고 있으며 5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는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상환되지 못했다. 현금성 자산 역시 2024년 기준 7억원 수준에 불과해 콘텐츠 확보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크게 초과하는 구조 역시 단기 유동성 위기를 보여준다. 신한회계법인은 감사를 통해 ‘의견거절’을 제시했는데 이는 재무제표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투자 판단 자체가 어려운 상태를 뜻한다.
이 같은 상황은 이번 딜의 성격을 규정짓는다. 향후 왓챠가 인수되더라도 일반적인 기업 인수가 아니라 부채를 조정하고 핵심 자산만 선별하는 구조조정형 거래에 가깝다는 것이다. 인수자는 왓챠의 플랫폼 인프라와 추천 알고리즘, 이용자 데이터 등은 확보하되 과도한 부채는 회생 절차나 채권단 협상을 통해 정리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 과거 분쟁 여진…데이터 리스크 변수
과거 대기업과의 협상 과정에서 남은 후유증까지 감안하면 인수가 곧 해법이라는 단정은 어렵다.
최근 지식재산처(과거 특허청) 및 업계에 따르면 왓챠는 2022년 LG유플러스와 비밀유지계약(NDA)을 체결하고 투자 검토를 진행했다. 수개월간 실사가 이어지며 내부 데이터와 기술 구조 등 핵심 정보가 상당 부분 공유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2023년 LG유플러스는 돌연 투자 검토를 중단했다.
문제는 협상 결렬 이후다. LG유플러스는 왓챠와의 계약 이후 왓챠와 유사 서비스인 ‘유플러스 TV 모아’를 출시했고 왓챠는 서비스 구조와 데이터 활용 방식에서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판단했다. 분쟁은 지식재산당국으로 이어졌으며 지난달 말 지식재산처는 LG유플러스의 데이터 부정 사용을 인정하고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카목(데이터 부정사용) 규정을 적용해 시정권고 결정을 내렸다.
당국은 왓챠가 ‘왓챠피디아’를 통해 2012년부터 축적해온 영화 평가자 수, 평균 별점, 별점 분포, 코멘트 등의 데이터가 XML 형태로 구조화돼 계약에 따라 제한된 대상에게만 제공된 점 등을 근거로 데이터산업법상 보호 요건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지식재산처 관계자는 “해당 결정은 3월 30일 통보됐으며 기업은 한달 내 수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권고를 수용할 경우 기업은 재발방지 확약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시정권고는 법적 강제력이 있는 명령은 아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유사 행위가 반복될 경우 과징금 등 제재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LG유플러스는 해당 결정을 검토 중인 상태다.
LG유플러스는 해당 사안과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다. 왓챠 내부에서는 투자 검토 과정에서 공유된 정보와 이후 출시된 서비스 간 경계가 명확히 분리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여부를 떠나 중소 플랫폼과 대기업 간 협상 구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며 "협상이 성사될 경우 흡수되는 구조가 일반적인 반면 결렬될 경우에는 핵심 정보 노출이라는 부담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왓챠는 시간과 비용을 소모한 채 사업 경쟁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다시 매각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됐다.
▲ CJ ENM 변수…인수는 ‘확장’이 아니라 ‘부담 이전’일 수도
현재 인수 후보로 거론되는 CJ ENM 역시 현금 흐름이 원활한 상황은 아니다. CJ ENM은 OTT 플랫폼 티빙을 운영 중이지만 콘텐츠 투자 확대에 따른 적자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 상태에서 추가 플랫폼을 흡수한다는 것은 단순한 확장이 아니라 비용과 리스크의 이전일 수 있다.
지난 7일 공시에 따르면 티빙의 지난해 매출은 4059억원으로 전년 대비 295억원 감소했고 당기순손실은 893억원으로 122억원 확대됐다. 외형 성장이 꺾인채 수익성 개선이 제한적인 수준에 머문 것이다.
티빙 조차 곳간이 마르지 않도록 버텨내면서 4년째 계류된 웨이브와의 합병을 기다리는 상황이다. CJ ENM 관계자는 "비밀 유지 조항으로 왓챠 인수 관련해 밝힐수 있는 입장이 없다"고 전했다.
▲ 왓챠, OTT 판도 변화 트리거?
왓챠가 보유한 약 340억원 규모의 매출과 충성도 높은 이용자층, 추천 알고리즘은 분명 매력적인 자산이다. 다만 부채 정리 비용과 조직 재편, 서비스 통합에 따른 추가 투자까지 감안할 경우 실제 인수 부담은 단순 인수가격을 크게 웃돌 수밖에 없다.
부채를 어떤 방식으로 정리하고 플랫폼을 어떻게 재편하느냐에 따라 인수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왓챠 인수전은 단순한 기업 매각을 넘어 국내 OTT 시장 재편의 신호탄이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앱 마켓 기준 이용자 지표를 보더라도 왓챠는 여전히 견고한 사용자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티빙이 1.9만명인 반면 왓챠의 사용자 리뷰는 26만명에 이른다. 배우나 영화 평론가들이 쓰인 앱으로 이름을 알리며 리뷰·평가 중심의 서비스를 영위해온 왓챠는 플랫폼 특성상 이용자 참여도가 높다는 점이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꼽힌다.
국내 OTT 시장은 이미 포화 단계에 접어들었고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사업자와의 격차도 여전히 크다.
아이지에이웍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넷플릭스의 DAU 평균은 355만명으로 국내 서비스 중인 OTT 중 1위를 기록했다. 또 티빙이 162만명, 웨이브가 84만명으로 웨이브를 합병해도 넷플릭스에 한참을 뒤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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