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주를 찾아서] 좁쌀·물·바람이 만든 예술… 40도 이슬에 맺힌 ‘어머니의 향기’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우리 전통주를 찾아서] 좁쌀·물·바람이 만든 예술… 40도 이슬에 맺힌 ‘어머니의 향기’

뉴스컬처 2026-04-16 19:35:30 신고

3줄요약
고소리술. 사진=제주술익는집 홈페이지 갈무리
고소리술. 사진=제주술익는집 홈페이지 갈무리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제주의 어머니들은 하루를 두 번 살았다. 낮에는 밭에 나가고, 물때가 맞으면 바다에 들었다. 집에 돌아와 식구들 끼니를 챙긴 뒤에도 일이 끝나지 않았다. 밤이 깊으면 다시 아궁이 앞에 앉아 술을 다끄었다. 소줏고리. 제주 방언으로 ‘고소리’ 코 끝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술을 받는 일은 제사상과 잔칫상을 준비하는 집안일이었다. 아이들 학비와 살림을 보태는 노동이기도 했다. 그래서 고소리술은 어머니 향기를 떠올리게 하는 ‘모향주’, 어머니를 그리게 하는 ‘사모주’, 땀과 눈물 한 방울씩 떨어진다는 뜻의 ‘한주’라고 불린다. 술 한 잔 앞에 제주 여성의 노동과 집안 살림이 서려있다.

◇오메기술에서 태어난 제주 전통 소주

고소리술은 발효주인 오메기술을 다시 증류해 얻는 제주 전통 소주다. ‘고소리’라는 이름은 소줏고리를 가리키는 제주 방언에서 나왔다. 한때는 개성소주, 안동소주와 우리나라 3대 소주 가운데 하나로 불렸다. 시중 희석식 소주와 갈라지는 대목도 뚜렷하다. 고소리술은 발효와 증류, 숙성 단계를 거치기 때문에 좁쌀이 지닌 향과 맛이 술 안에 남는다. 초록병 소주가 빠른 소비를 전제로 태어난 술이라면, 고소리술은 곡식과 시간의 자취를 그대로 데리고 가는 술에 가깝다.

술의 뿌리는 고려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3세기 말 원나라가 제주를 군마 생산 기지로 삼고 많은 몽골인이 들어오던 때, 목축 기술과 함께 증류 기술도 제주에 전해졌다. 원래 제주에는 좁쌀을 써서 빚는 오메기술이 있었다. 증류법이 더해지면서 고소리술이 자리 잡았다. 조선 시대 기록도 남아 있다. '동국여지승람'은 혼인을 청할 때 술과 고기를 갖춘다고 적혀있다. 김정의 '제주풍토록'은 청주가 귀해 사계절 내내 소주를 썼다고 전한다. 제주 사람들 삶에서 소주가 얼마나 가까운 자리에 놓였는지 짐작할 만한 대목이다.

고소리술 김희숙 명인. 사진=제주술익는집 홈페이지 갈무리
고소리술 김희숙 명인. 사진=제주술익는집 홈페이지 갈무리

 

◇제사상과 생계… 손과 시간으로 완성하는 술

고소리술은 집집마다 빚던 술이었다. 쌀이 귀했던 제주에서는 좁쌀, 곧 오메기를 써서 술을 만들었다. 집안 제사, 혼례, 명절, 마을 제의에 술이 빠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살림이 넉넉하지 않던 집에서는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보태기도 했다. 고소리술이 제주 여성의 노동사와 함께 놓이는 까닭이다. 낮에는 밭일과 물질, 밤에는 술다끄는 일이 이어졌다. 새벽이 되어서야 아이들 곁에 누울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주세령 시행 뒤에는 밀주 취급을 받으면서 점차 자취가 흐려졌다.

술 빚는 방식은 손이 많이 간다. 잘 불린 좁쌀을 빻아 반죽한 뒤 문고리 모양 구멍떡, 오메기떡을 만든다. 떡을 삶아 누룩과 물을 더해 치대고 항아리에 앉힌다. 술이 괴기 시작하면 조와 약간의 쌀로 지은 고두밥을 넣고 며칠 더 발효시켜 오메기술을 얻는다. 맑은 윗술을 다시 무쇠솥에 붓고 고소리를 올린다. 연결 부위는 밀가루 반죽으로 막고, 고소리 윗부분 오목한 자리에는 찬물이 든 장탱이를 얹는다. 아궁이 불을 올리면 알코올 성분이 먼저 기체가 된다. 차가운 장탱이를 만나 다시 액체가 된 뒤 고소리 코를 타고 흘러내린다. 이렇게 받은 술을 항아리에 담아 2년 안팎 숙성시키면 고소리술이 완성된다. 도수 40도 안팎인데도 목넘김이 부드럽고, 장기 숙성 뒤에는 은근한 꽃향과 깊은 풍미가 난다.

고소리술 양조장. 사진=제주술익는집 홈페이지 갈무리
고소리술 양조장. 사진=제주술익는집 홈페이지 갈무리

 

◇성읍마을에서 시작된 명맥… 4대째 130년의 맛

고소리술은 한 집안 손에서 4대째 이어지고 있다. 제주술익는집의 시작에는 1888년 태어나 102세를 살다 간 고(故) 이성화 할머니가 있다. 일제강점기 성읍마을에서 술을 빚고 주막을 꾸리며 두 아들을 육지와 일본에 유학 보냈다. 술맛이 좋다는 평도 널리 퍼졌다. 이성화 할머니에게서 양조법을 배운 며느리 고(故) 김을정 선생은 1990년 오메기술 기능보유자, 1995년 고소리술 기능보유자가 됐다. 제주술익는집 간판을 걸고 술 빚기에 매달린 사람은 김을정 선생의 며느리 김희숙 대표다. 구좌읍 세화리에서 자란 김 대표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몰래 술 빚는 모습을 보며 컸다. 성읍마을에 시집간 뒤에는 시어머니 곁에서 술 빚기를 배웠고, 1995년 전수자가 됐다. 지금은 막내아들 강한샘 씨가 전수자 자격을 얻어 김 대표를 돕고 있다. 고소리술은 이성화, 김을정, 김희숙, 강한샘으로 이어지며 4대째 맥을 잇고 있다.

고소리술은 제주 소주라는 말 한 줄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다. 섬의 곡식 사정, 제사와 혼례, 여성의 밤노동, 집안의 생계, 한 집안이 붙든 전승이 얽혀 있다. 고소리술을 마신다는 건 제주가 오래 지켜온 생활사를 입안에 올리는 일에 가깝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